가을의 소원 - 안도현 적막의 포로가 되는 것 궁금한 게 없이 게을러지는 것 아무 이유없이 걷는 것 햇볕이 슬어놓은 나락 냄새를 맡는 것 마른 풀처럼 더 이상 뻗대지 않는 것 가끔 소낙비를 흠씬 맞는 것 혼자 우는 것 울다가 잠자리처럼 임종하는 것 초록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 인상깊은/시 2021.11.03
철길 - 안도현 철길 안도현 혼자가는 길보다는 둘이서 함께 가리 앞서지도 뒤서지도 말고 이렇게 나란히 떠나가리 서로 그리워하는 만큼 닿을 수 없는 거리가 있는 우리 늘 이름을 부르며 살아가리 사람 사는 마을에 도착하는 날까지 혼자가는 길보다는 둘이서 함께 가리 인상깊은/시 2021.10.23
성묘 - 안도현 성묘 안도현 햇볕도 대추나무 끝에 좋은 날 어린 유경이 데리고 아버지 산소 성묘를 갔지요 억새꽃 삼천리로 피어 있고요 방아깨비는 툭툭 튀어 오르고요 할아버지 만나러 간다는 내 어릴 적 가을 한 때 생각하면 아버지 발자국 되밟으며 가만히 듣던 그 벅찬 숨소리 생각하면 오늘도 유경이도 따라오며 듣겠구나 생각하면 어느덧 나는 시냇물 데리고 바다로 들어가는 강물이지요 모든 길이 무덤에 이르러 깊어지지요. 인상깊은/시 2021.10.12